눈 뜬 장님

혼모쿠 2017. 1. 24. 03:31
"처음 이 눈으로 세상을 봤을 때,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어. 내 눈에 보이는 죽음은 사람의 죽음만이 아니었으니까. 대기 중에 흐르는 공기, 공간을 채우는 시간, 사람의 의지,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적인 힘....그것들은 모두 살아있는 거였고, 살아있다면 당연히 죽음이 있지."


"주변의 모든 것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으니까.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 처음 이 눈으로 '죽인' 것이 뭔 줄 알아? 간호사가 기분 전환하라고 갖다놓은 백합이었어. 살짝 손을 갖다대기만 했는데, 유리 깨지는 것처럼 파스스 부서져 버리더군. 조금도 예쁘지 않았어. 그저 허무했지."

"그리고 알아버렸어."


"아, 생각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모든 것의 죽음이 보인다는 건,모든 것에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어. 죽음에 의미가 없는데 삶에 의미가 있을 리가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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